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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반응형"암 2기입니다", "3기라서 수술 후에 항암치료를 해야 합니다." 암 진단을 받으면 거의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 바로 병기입니다. 그런데 숫자만 들어서는 내 암이 어느 정도인지, 왜 그 숫자가 나왔는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병리과에서 일하다 보면 수술 검체 결과지 마지막 줄에 적힌 pT2 N1a 같은 기호를 매일 보게 됩니다. 의료진에게는 익숙한 언어지만,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암호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병원에서 암의 1기, 2기, 3기, 4기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 큰 틀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위암, 대장암, 폐암처럼 장기마다 다른 세부 기준은 다음 글부터 하나씩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목차
- 암 병기란 무엇이고 왜 나눌까
- 병기를 정하는 국제 기준, AJCC와 UICC
- TNM 병기 읽는 법
- 0기부터 4기까지, 병기별 의미
- 임상 병기와 병리 병기는 왜 다를까
- 병기와 등급(grade)은 다릅니다
- TNM을 쓰지 않는 암도 있습니다
- 병기에 따라 생존율은 얼마나 달라질까
- 자주 묻는 질문
- 마무리
암 병기란 무엇이고 왜 나눌까
병기(stage)는 암이 몸 안에서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단계로 나타낸 것입니다. 처음 생긴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 주변 림프절까지 갔는지, 멀리 떨어진 장기까지 퍼졌는지를 정리한 일종의 지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병기를 나누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치료 방법을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위암이라도 초기라면 내시경 절제로 끝날 수 있지만, 진행된 경우에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함께 해야 합니다. 둘째, 예후를 가늠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전 세계 의료진이 같은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의 병원과 미국의 병원이 같은 기준으로 병기를 매겨야 치료 성적을 비교하고 연구 결과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병기를 정하는 국제 기준, AJCC와 UICC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병기 체계는 TNM 병기입니다. 1940년대 프랑스의 피에르 드누아(Pierre Denoix)가 종양의 크기, 림프절 침범, 전이 여부로 암을 분류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국제암통제연합(UICC)과 미국암연합위원회(AJCC)가 각각 발전시켜 오다가 1987년에 하나의 체계로 통합됐습니다.
TNM 기준은 새로운 연구 결과가 쌓이면 개정됩니다. 현재 국내 병원에서 병기 진단을 내릴 때 기준으로 하는 것이 AJCC 8판입니다. 최근에는 개정 방식이 바뀌어, AJCC는 책 한 권을 통째로 바꾸는 대신 장기별로 Version 9을 순차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폐암은 2025년부터, 침샘암과 HPV 관련 구인두암은 2026년부터 Version 9이 적용됐고, 아직 개정되지 않은 장기는 8판을 그대로 씁니다. UICC도 2025년에 9판을 발간하고 2026년부터 적용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지에는 보통 "AJCC 8th edition"처럼 어떤 판을 기준으로 했는지 함께 적습니다. 판이 바뀌면 같은 종양이라도 병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TNM 병기 읽는 법

TNM은 세 글자의 머리글자입니다. 암을 세 방향에서 따로 평가한 뒤 하나로 묶는 방식입니다.
T(Tumor, 원발 종양)는 처음 생긴 암의 크기와 얼마나 깊이, 넓게 자랐는지를 나타냅니다. 숫자가 클수록 종양이 크거나 깊이 침범한 것입니다. 기준은 장기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이나 폐암은 주로 암의 범위, 크기(cm)를 보고, 위암이나 대장암은 암세포가 벽을 얼마나 깊이 뚫고 들어갔는지를 봅니다.
N(Node, 림프절)은 암 주변의 영역 림프절로 퍼졌는지를 나타냅니다. N0은 림프절 전이가 없다는 뜻이고, N1부터 N3까지는 전이된 림프절의 개수나 위치에 따라 나뉩니다.
M(Metastasis, 원격 전이)은 처음 생긴 장기에서 멀리 떨어진 간, 폐, 뼈, 뇌 같은 곳으로 퍼졌는지를 나타냅니다. M0은 원격 전이가 없다는 뜻이고, M1은 있다는 뜻입니다.
기호 의미 TX 원발 종양을 평가할 수 없음 T0 원발 종양의 증거가 없음 Tis 상피내암(carcinoma in situ) T1 ~ T4 숫자가 클수록 종양이 크거나 깊이·넓게 침범 NX 영역 림프절을 평가할 수 없음 N0 / N1 ~ N3 림프절 전이 없음 / 전이 범위에 따라 단계 구분 M0 / M1 원격 전이 없음 / 원격 전이 있음 T1a, T1b, N2c처럼 숫자 뒤에 알파벳이 붙기도 합니다. 같은 단계 안에서 다시 세분한 것으로, 장기별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0기부터 4기까지, 병기별 의미

T, N, M이 정해지면 이 조합을 묶어 병기 그룹(stage group)을 매깁니다. 보통 0기부터 IV기까지 나누고, 장기에 따라 IIA, IIIB처럼 더 잘게 나누기도 합니다.
- 0기는 상피내암입니다. 암세포가 가장 바깥의 상피층에만 있고 그 아래로 뚫고 들어가지 않은 상태입니다. 모든 암에 0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 I기는 암이 상피 아래로 침윤했지만 크기가 작고 처음 생긴 장기 안에 머물러 있는 초기 단계입니다.
- II기는 종양이 더 커졌거나 더 깊이 자란 단계입니다. 암 종류에 따라 림프절 전이가 일부 포함되기도 합니다.
- III기는 주변 림프절이나 인접 조직까지 퍼졌지만 멀리 떨어진 장기로는 가지 않은 단계입니다.
- IV기는 처음 생긴 장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이된 단계입니다. 대부분의 암에서 M1이면 종양 크기와 상관없이 IV기가 됩니다.
여기서 꼭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위의 설명은 일반적인 흐름일 뿐이고, 실제로 어떤 TNM 조합이 몇 기가 되는지는 장기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림프절 전이가 있으면 대장암은 바로 III기지만, 다른 암에서는 II기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3기"라는 말도 암 종류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임상 병기와 병리 병기는 왜 다를까
"수술 전에는 2기라고 했는데 수술 후에 3기가 됐어요." 실제로 흔히 있는 일입니다. 병기를 언제, 무엇을 근거로 정했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임상 병기(cTNM)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진찰, CT·MRI·PET 같은 영상 검사, 내시경, 조직검사를 바탕으로 정한 병기입니다. 병리 병기(pTNM)는 수술로 떼어낸 조직을 병리과에서 직접 잘라 현미경으로 확인한 뒤 정한 병기입니다.
영상으로는 1~2mm 크기의 림프절 전이까지 다 잡아내기 어렵습니다. 반면 병리 검사에서는 떼어낸 림프절을 하나하나 찾아 현미경으로 봅니다. 그래서 수술 후 병리 병기가 임상 병기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습니다. 병리 결과지에는 보통 pT와 pN이 적히고, M과 최종 병기는 영상 검사 결과까지 합쳐 담당 의사가 정합니다.
결과지에서는 c와 p 말고도 몇 가지 기호를 더 볼 수 있습니다. y는 수술 전에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먼저 받은 뒤 평가한 병기입니다. ypT2라면 치료 후 수술한 검체에 남아 있던 암을 기준으로 정했다는 뜻입니다. r은 암이 없던 기간이 지난 뒤 재발했을 때 다시 매긴 병기이고, a는 부검에서 처음 발견된 암의 병기입니다. T 뒤에 붙는 (m)은 같은 부위에 원발암이 여러 개 있다는 표시입니다.
수술 결과지에는 R 분류도 자주 나옵니다. 수술 후 암이 남았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R0은 절제면에 암이 남지 않은 상태, R1은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암이 남은 상태, R2는 눈으로 보이는 암이 남은 상태입니다. 병리과에서 검체의 절제면을 꼼꼼히 확인하는 이유가 바로 이 R0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병기와 등급(grade)은 다릅니다
병기와 자주 헷갈리는 말이 등급(grade)입니다. 병기가 암이 얼마나 퍼졌는지를 보는 것이라면, 등급은 암세포가 얼마나 나쁘게 생겼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정상 세포와 비슷하게 생긴 암세포도 있고, 원래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암세포도 있습니다. 정상과 비슷할수록 분화가 좋다(G1, well differentiated)고 하고, 모양이 많이 망가질수록 분화가 나쁘다(G3, poorly differentiated)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분화가 나쁠수록 빨리 자라고 공격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병기에 등급이나 생물학적 특성을 함께 반영하는 암도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유방암입니다. AJCC 8판에서는 TNM만으로 정하는 해부학적 병기와 함께, 종양 등급, 에스트로겐 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 HER2 상태까지 반영한 예후 병기를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크기와 림프절 상태가 같아도 암의 성격에 따라 병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립선암도 PSA 수치와 등급군(Grade Group)을 병기에 반영합니다.
TNM을 쓰지 않는 암도 있습니다
모든 암을 TNM으로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암의 성격상 TNM이 잘 맞지 않는 경우에는 따로 만든 기준을 씁니다.
림프종은 처음부터 림프계 전체에 퍼질 수 있는 암이라, 종양 크기 대신 침범한 림프절 부위의 분포를 보는 루가노(Lugano) 분류를 씁니다. 그래서 림프종은 진단 당시 IV기인 경우가 드물지 않고, IV기라도 치료 반응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백혈병은 처음부터 혈액과 골수에 퍼져 있는 암이라 병기 대신 유전자 검사 등을 바탕으로 한 위험도 분류를 주로 씁니다.
뇌종양은 뇌 안에 림프절이 없어 N을 매길 수 없고, 크기보다 조직의 종류와 위치가 예후에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병기 대신 WHO 등급을 중심으로 평가합니다. 자궁경부암, 난소암 같은 부인암은 국제산부인과연맹(FIGO) 병기를 함께 쓰고, 간암은 국내에서 간 기능까지 고려한 별도 병기 체계를 함께 쓰기도 합니다.
병기에 따라 생존율은 얼마나 달라질까
국가암등록통계에서는 TNM보다 단순한 요약병기를 씁니다. 암이 생긴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 주위 장기나 인접 조직, 림프절까지 침범한 국소, 멀리 떨어진 부위로 전이된 원격으로 나눕니다. 병원에서 듣는 1~4기와는 다른 분류이지만, 암이 퍼진 정도에 따라 예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 줍니다.
전체 암을 기준으로 보면 국한 단계에서 발견된 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90% 안팎이지만, 원격 전이 단계에서는 20%대로 크게 떨어집니다. 암종별로 보면 차이가 더 뚜렷합니다. 췌장암은 진단 당시 43.3%가 이미 원격 전이 상태였고,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2.4%에 그쳤습니다. 폐암도 진단 당시 40.7%가 원격 전이였습니다.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국가암검진이 자리 잡으면서 진단 시 국한 단계의 비율은 2022년 50.9%로, 요약병기를 처음 수집하기 시작한 2005년보다 5.3%p 늘었습니다. 다만 아직도 암 환자 5명 중 1명은 원격 전이 상태에서 진단됩니다. 결국 병기를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찍 발견하는 것입니다.
생존율은 과거 수년간 진단받은 환자들의 평균이라, 한 사람의 예후를 그대로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치료법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같은 병기라도 암의 성격과 몸 상태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4기면 치료가 불가능한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4기는 원격 전이가 있다는 뜻이지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림프종처럼 4기에서도 치료 반응이 좋은 암이 있고, 대장암의 간 전이처럼 전이 부위를 수술로 제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가 나오면서 4기 환자의 치료 성적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습니다.Q. 재발하거나 전이되면 병기가 바뀌나요?
처음 진단받을 때 정한 병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기로 치료받은 뒤 재발해도 "2기 암이 재발했다"고 기록하고, 재발 시점의 상태는 r 기호를 붙여 따로 평가합니다.Q. 같은 3기면 위암이든 폐암이든 상태가 비슷한가요?
아닙니다. 병기 기준은 장기마다 따로 만들어져 있어서, 같은 숫자라도 암 종류에 따라 퍼진 정도와 예후가 다릅니다. 내 병기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해당 암의 기준을 따로 봐야 합니다.마무리
암 병기는 암이 얼마나 퍼졌는지를 T(원발 종양), N(림프절), M(원격 전이) 세 방향에서 평가해 0기부터 4기까지 묶은 국제 공통 언어입니다. 치료 전 영상으로 정한 임상 병기와 수술 후 현미경으로 확인한 병리 병기는 다를 수 있고, 결과지의 p, y, R0 같은 기호에는 그 병기를 언제, 어떻게 정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병기는 치료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같은 숫자라도 암 종류와 암의 성격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다음 글부터는 위암, 대장암, 폐암, 유방암 등 장기별로 T, N, M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 하나씩 자세히 정리하겠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개인의 병기와 치료 계획은 담당 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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