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의 이야기, 병리학과 다양한 질환들

임상병리사가 알려주는 기초 병리학. 병리학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각종 질병의 원인과 기전을 분석하여 질병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질병을 다루는 의생명과학의 가장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분야이다.

  • 2024. 4. 8.

    by. 윰리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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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리학은 질병에 관한 기초 의학으로서 의학의 근간을 형성하는 학문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을 시작으로 중세기와 문예부흥기, 근대기를 거치면서 병리학이 발전해 왔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시대 흐름에 따라 병리학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발전하여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병리학의 발전 과정
      병리학의 발전

      히포크라테스 의학

      히포크라테스는 엠페도클레스의 네 가지 원소 중에서 물, 즉 액체를 더욱 중요시하여 질병의 본질에 관한 액체병리학설을 세움으로써 희랍 의학을 과학적 단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우리 몸에는 황담즙, 흑담즙, 점액과 혈액 등 네 가지 액체가 있어서 이것들이 우리 몸 안에 조화롭게 혼합되어 있는 상태를 크라시스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상태를 디스크라시스라고 하면서 전자와 같은 상태가 건강한 상태이고 후자와 같은 상태가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시대의 학자 갈레노스는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 물질을 영기라고 보고, 히포크라테스의 네 가지 액체 중에서 특히 혈액을 중요하게 여기는 액체병리학설을 계승하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액체병리학설이 알려지고 상당 기간이 지난 후 이 학설을 배척하고 나선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고체병리학설을 주장한 아스크레피아데스로서 생명 현상과 질병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첫째 음식물이 섭취되면 미세하게 분해되어 작은 분자상태로 분포하다가 서로 합쳐져서 조직을 형성하며 둘째 우리 몸에는 많은 관 구조가 있는데 상기한 작은 분자들이 액체와 더불어 정연한 배열을 하면서 관 내부에서 운동할 때 우리는 생명을 가지게 되고 건강하며 그 질서와 운동에 이상이 있을 때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체병리학설입니다.

       

      중세기 병리학

      중세기는 오랫동안 서구 세계를 암흑 속에 가두었으나 이러한 때에 이탈리아의 사레르노, 볼로냐 및 파두아와 프랑스의 몽페리 등에 의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다시 학문적 활동이 시작되고 의학적 또는 법의학적 목적으로 인체 해부가 가능해짐에 따라 의학 발전에 서광이 비쳤습니다. 즉 이탈리아의 의학교에서는 유행병과 중독사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시체 해부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1300년경에 이탈리아 볼로냐 의학교의 알데롯토는 처음으로 해부병리학을 의학의 교과 과목으로 정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1315년 알데롯토의 제자인 루치는 두 사람의 부인을 대상으로 시체 해부를 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는 해부학의 발전과 병행하여 생전의 임상적 증상과 사후의 병리해부소견을 대비하는 일이 유행하면서 병리학이 더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베니비니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20구의 시체 해부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의학사적으로 보아 병리해부학에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은 해부학입니다. 훗날 해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 베사리우스는 1543년에 시체해부로 인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순수한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인체의 구조'라는 대저를 출간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병리해부학에 위대한 공적을 남긴 사람은 페르넬입니다. 그는 1554년에 의학 교과서를 썼고 이 책은 생리학, 병리학 및 치료의학을 취급한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병리학을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고 있는 것은 이 사람의 교과서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문예부흥기 병리학

      17세기에 들어와서 의학계에 일대 충격을 주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하비에 의한 혈액순환의 발견입니다. 그 후 1665년 영국의 훅은 자신이 조립한 복합 현미경으로 코르크 조각의 세포 구조를 관찰하여 세포를 발견하고 네덜란드의 레벤후크는 스스로 만든 단식 현미경으로 세균과 원생동물을 발견하였으며 이탈리아의 말피기는 개구리의 폐와 방광에서 모세혈관과 적혈구를 발견하여 각각 병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1679년 보네트가 17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쓰면서 이 책은 병리해부학서라기보다는 병리해부 기록집으로서 자기가 경험한 것과 이전에 행해진 병리해부기록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며 베니비니의 단행본과 마찬가지로 병리해부기록집의 형식입니다. 18세기에는 질병을 관찰함에 있어서 생전에 환자가 보인 증상과 경과를 사후의 병리해부소견과 비교 연구하는 신사조가 조성되었습니다. 특히 보네트의 저서에 불만을 품은 모르가니는 생전의 증상과 경과를 사후 병리해부소견과 비교한 후 고금의 문헌을 찾아서 질병의 기전을 밝히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50여 년간에 걸쳐 직접 경험한 증례와 그의 스승 발살바가 취급한 증례의 일부를 합한 700여 증례를 정리하여 '해부학적 연구에 입각한 질병의 위치와 원인'이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질병이 특정 장기나 조직에 나타난 자리를 병변이라는 용어로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그는 병리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장기병리학의 창설자가 됩니다. 이후 프랑스 비샤의 조직병리학을 거쳐 독일 비르효의 세포병리학으로 이어지면서 근대적 체계로서의 병리학이 완성된 다음 전자 현미경이 등장할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주로 광학 현미경을 이용하여 미시적 세계를 더듬으면서 의학 발전에 공헌하게 됩니다. 비샤는 프랑스의 병리학계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31세를 일기로 180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2년 반동안 네 권의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병리학의 역사상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그 자신이 쓴 해부학 총론과 제자들이 필기하여 두었다가 그가 사망한 후 단행본으로 발간한 '비샤 최후의 병리학 강의'입니다. 그는 외과학을 공부하다가 해부학이 막연히 장기 전체를 대상을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결합조직, 혈관, 골, 연골 등의 조직을 단위로 인체를 관찰하였으며 훗날 조직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이를 기반으로 질병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도 장기보다 조직을 단위로 관찰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며 이것이 곧 조직병리학입니다. 

       

      근대 병리학

      독일의 비르효는 모든 세포가 세포에서 유래한다는 전제하에 사람의 몸도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세포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병변의 영역도 모르가니의 장기나 비샤의 조직보다는 세포 수준에서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근대 병리학의 초석이 된 세포병리학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창시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얼마 후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의 루스카에 의해 개발된 전자 현미경이 드디어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까지 실용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질병 탐구도 세포막, 세포질, 핵 등의 세포 내 소기관 수준에서 연구하는 소기관 병리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전자 현미경의 등장은 형태학 분야에 혁명적인 변혁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기능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서 효소, 핵산, 고분자 단백 등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생체를 구성하는 분자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해명하려는 분자생물학이 대두되기에 이릅니다. 이로 말미암아 질병의 본질에 대하여도 형태학적인 소기관 병리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기관을 구성하는 물질, 즉 화학적 내지는 물리화학적 성질을 가진 분자 수준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변화가 일어나 마침내 "질병은 신체를 구성하는 분자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분자병리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은 질병관의 변천과 더불어 발전한 병리학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병원병리학 혹은 외과병리학의 토대가 됩니다. 병리전문의 제도 역시 미국에서 처음 생겨나 병리전문의가 병원에 근무하면서 외과병리, 세포병리, 부검병리를 하면서 인체 질환의 형태학적 특징은 물론 초기 변화, 치료에 대한 반응, 질병의 다양성에 대한 많은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병리학적 지식이 임상의학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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